[신문기사] 더꿈의 시니어 인턴기사@중앙일보

 

기업 성과 올리는 백전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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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여성 CEO와 70대 시니어 인턴이 함께 일하며 ‘절친’이 되는 내용의 영화 ‘인턴’의 한 장면. 로버트 드니로(왼쪽)와 앤 해서웨이가 나온다.

#인턴은 용감했다. “우리 팀장님이 어리다고 무시하는 건가요. 이분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습니까?” 젊은 여성 팀장에게 고압적으로 대하던 협상 파트너의 표정이 머쓱해졌다. 인턴의 지원 사격에 팀장의 움츠린 어깨가 조금 펴졌다. 힘든 거래처 회의를 마친 뒤 인턴이 팀장을 위로했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 인턴을 합니다. 편히 여기고 막 대해 주세요.” 23세 팀장과 67세의 인턴은 미소를 주고받았다.

#창업 2년차 스타트업의 대표이사와 인턴이 세미나에 참석했다. 한 고객이 회사 사업 아이템을 살펴보고는 이들에게 다가왔다. 그가 양복 차림의 60대 신사에게 명함을 건네며 인사하자 신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는 인턴인데요.” 옆에 선 30대 여성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대표이사입니다.”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다. 각각 사회적 기업 ‘상상우리’의 인턴 권오서(67)씨와 김민경(23) 팀장, ‘더꿈’의 인턴 정용진(61)씨와 박시진(34) 대표가 실제로 겪은 일들이다.

퇴직 후 아내와 사별하고 무료한 삶을 보내던 70대 노인이 우연히 한 온라인 쇼핑몰 업체의 인턴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한다. 30대 여성 CEO는 정부 정책 탓에 별 기대 없이 시니어 인턴을 채용한다. 노(老) 인턴은 지혜와 친화력을 발휘해 CEO를 돕고, 둘은 ‘절친’이 된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인턴’의 줄거리다. 세대 갈등이 극심한 한국에서는 딴 세상 얘기로 들릴 법하다. 하지만 노인의 경륜을 통해 기업의 성과를 올리는 시도가 우리 사회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마이크로크레디트 신나는조합은 한화생명과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의 후원으로 ‘시니어 인턴십’을 운영한다. 올해 시니어 구직자 20명을 선발해 3개월간 교육한 뒤 사회적 기업에 인턴으로 연결해 줬다. 2011년 보건복지부와 한국노인인력개발원도 같은 제도를 도입했다. 만 60세 이상을 인턴으로 채용하면 비용의 50%를 최대 3개월까지 정부가 지원한다.

지난 16일 오전 서울 동자동 ‘상상우리’ 사무실에서 만난 시니어 인턴 권오서씨와 박생규(61)씨는 청바지 차림의 다른 직원들과 달리 양복에 넥타이까지 갖춘 정장 차림이었다. 각각 개인사업과 대기업 임원 경력을 갖춘 두 사람은 신나는조합의 시니어 인턴십에 선발돼 은퇴자 교육 지원 사회적 기업인 상상우리에서 일하고 있다. 직원 12명, 연매출 5억원인 회사의 기획과 홍보 담당이다.

상상우리가 시니어 인턴을 채용한 것은 지난해 여름부터다. 총 8명의 시니어 인턴이 2~3개월씩 회사를 거쳐 갔다. 이 회사 신철호(39) 대표는 “시니어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인 만큼 시니어들의 노하우와 경험을 직접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니어 인턴의 인적 네트워크와 젊은 창업가의 도전정신은 시너지 효과를 냈다. 지난 6일 회사의 첫 번째 토크콘서트 ‘시니어 올 라이브 포럼’이 성공적으로 끝난 데에는 연사 섭외부터 홍보까지 두 시니어 인턴인 권씨와 박씨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두 사람은 10월 27일자로 ‘인턴’ 딱지를 떼고 정직원이 됐다.

◆경영·행정, 시니어가 잘하네=정보·지식 서비스 분야 사회적 기업 ‘더꿈’은 창업 2년차, 직원 3명의 스타트업이다. 정용진씨는 이 회사가 운영하는 시니어 웹진의 기사 담당 인턴으로 지난 7월 채용됐다. 그런데 일을 맡겨 보니 정씨의 특기는 다른 데 있었다. 대기업 근무와 개인사업 경험이 모두 있어 경영과 고객 관리·접촉에 능했다. 젊은 CEO에게 피와 살이 되는 비즈니스 조언도 해줬다. 한 번은 정씨와 박시진 대표가 함께 협력업체 사람들을 만났다. 간단한 회의라 1시간이 못 돼 끝났고, 양쪽은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정씨가 박 대표에게 넌지시 말했다. “저녁 시간이 가까웠는데 지나가는 말이라도 ‘식사하고 가시라’고 했어야 해요. 그래야 다음 비즈니스도 도모할 수 있는 겁니다. 일은 돈으로만 되는 게 아니거든요.” 박 대표는 “당시 생각지 못한 조언에 고마웠다”며 “시니어가 여러 기업을 ‘마실’ 다니며 경험 자산을 공유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인 물처럼 갇혀 있는 시니어의 경험 자산에 여러 물길을 터주자는 것이다.

임양묵(62)씨는 인턴에서 임원으로 수직 상승한 사례다. 한옥을 짓고 수리하는 사회적 기업 한옥협동조합에서 시니어 인턴으로 2개월 근무한 후 상무이사가 됐다. 직원 8명에 연매출 10억원의 이 회사는 행정·대관 업무가 매번 골치였다. 중소기업이라 행정 전담 직원이 없었기 때문에 설계기사가 행정 업무까지 해야 했다. 그런데 36년간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한 임씨가 인턴으로 오자 단번에 해결됐다. 임씨는 행정 총괄 이사로 정식 채용됐다. 이 회사 장남경 대표는 “임 이사님 덕분에 다른 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실적도 개선=시니어 직원은 회사 실적에도 보탬이 된다. 유한킴벌리 고객지원센터에는 57~60세 상담사 8명이 정식 직원으로 근무한다. 회사의 노인용 요실금 언더웨어 제품에 대한 고객 문의에 답하는 일을 하며 4명씩 2개 조로 나뉘어 오전·오후 네 시간씩 교대로 일한다. 시니어 상담사의 활약으로 이 제품 매출액은 1년 새 35% 이상 늘었다. 김영일 유한킴벌리 홍보팀 차장은 “소비자들이 요실금 상담을 또래가 아닌 이들에게 얘기하기 곤란할 텐데 동년배 상담사는 편하게 받아들여 고객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조규식 유한킴벌리 대외협력본부 부장은 “시니어를 국가의 재정 투입 대상으로만 보면 답이 안 나온다”며 “시니어 산업의 규모가 커져 맞춤형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턴 해보니 청년 알겠네=시작은 양쪽 모두 쉽지 않았다. 한옥협동조합의 건축기사 김성하(25)씨는 “처음엔 나이 드신 분과 함께 일하는 게 불편할 것 같았다”고 했다. 상상우리의 김민경 매니저는 “또래 사이에 ‘노인은 보수적’이라는 통념이 있는 데다 초기 회의 때 내 제안을 자주 반대하셔서 소통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시니어들도 애로 사항이 있다. 임양묵씨는 출근 전 ‘인턴이라고 함부로 대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지’ 내심 걱정했다. 그래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조심했다. 박생규씨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했고, 설명을 들어도 한참 동안 개념이 와닿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로를 겪어본 지금은 다르다. 청년들은 “인생 선배로서 시니어들의 조언이 사회생활 초년병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시니어들은 “늙었다고 체념하지 마라. 나에게도 이 시대에 필요한 가치가 있더라”고 입을 모았다. 상상우리의 시니어교육 담당 박태희(35) 매니저는 “청년과 노인은 강점이 다르기 때문에 일자리 경쟁 상대가 아니다”며 “사회로 다시 나오려는 노인들에게 젊은 세대와 소통법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금 적어도 도움 돼=시니어 인턴은 주 2~3회, 주당 15시간가량 일하고 월 40만~50만원 정도를 급여로 받는다. 국민연금과 노령연금을 받고 있는 권오서씨는 “용돈에 보탬이 된다”고 했다. 정용진씨는 “무료 봉사할 수 있지만 그건 아무래도 힘이 빠지니까 이렇게 교통비 정도만 받는다”고 했다. 박생규씨는 “현역 때 연봉의 10분의 1도 안 되지만 돈을 떠나 활동 공간이 생겼다는 게 큰 의미”라고 말했다. 임양묵씨는 “내가 아직 쓸 만하다는 성취감이 가장 크다”고 했다. 그에게 “좀 쉬시라”는 가족들도 남들 앞에선 “우리 남편(아버지)은 지금도 일한다”며 자랑한다고 한다.

보건복지부·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시니어 인턴십 참여자는 2011년 3643명에서 올해는 1~9월 5996명으로 늘었다. 누적 참여자는 2만2000명, 참여 기업은 2120곳에 달한다. 설문조사에서 참여자 96.3%, 참여 기업 중 93.6%가 재참여 의사를 밝혔다. 박용주 한국노인인력개발원장은 “시니어들이 일할 수 있는 기업을 더 발굴하고, 직무설계와 사후관리를 보강하겠다”고 말했다.

심서현 기자, 하준호·최영권·정현웅 인턴기자 shshim@joongang.co.kr

 

출처:http://news.joins.com/article/18975518#n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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